빌베른 침공 Ruinas Invasion of Villvern (Operation Just Cause) | ||
마약과의 전쟁의 일부 | ||
![]() | ||
기간 | ||
1992년 12월 20일 ~ 1993년 1월 2일 | ||
장소 | ||
빌베른 전역 | ||
교전국 | ||
지휘관 | ||
존 F. 페어팩스 딕 체니 맥스웰 R. 서먼 노먼 슈워츠코프 | 에뜨레아 헤리에타 파보타 카프카 | |
결과 | ||
루이나의 승리 빌베른 방위군 해산 에뜨레아 헤리에타 실각 및 체포 | ||
1. 개요 [편집]
2. 배경 [편집]
1992년 2월 5일 루이나는 빌베른의 실권자 에뜨레아 헤리에타를 마약 밀매 혐의로 루이나 중앙법원에 기소했다. 헤리에타는 루이나가 사랜드 걸프를 장악하기 위해 자신의 제거를 시도하고 있다는 비난을 하였다. 25일에는 루이나에 도피중이던 헤베트리야 5세가 헤리에타의 해임을 발표하였다.
3월 11일, 페어팩스 대통령은 빌베른 토지 조차 비용 7백만 달러 지불 중지 등 빌베른에 대한 경제제제 조치를 발표했으며 4월 5일에는 루이나군 1천 3백명이 빌베른에 증원되었다.
9월 27일에는 루이나가 지원하는 쿠데타 음모 가담 혐의로 빌베른인 26명이 검거되었다.
1992년 5월 7일 빌베른에서는 총선이 있었다. 헤리에타가 지지하는 민주혁명당 카를로스 두케 후보와 야당연합인 시민민주동맹의 기예르모 엔다라 후보 간에 대통령 선거가 벌어졌다.
하지만 엔다라가 유효 득표의 2/3를 넘는 득표를 기록했음에도 투표 종료 16시간이 지난 8일 까지 빌베른 당국은 어떤 발표도 하지 않았다. 이에 부정선거 행태에 분노한 수만 명의 시민들이 항의 시위에 나섰다.
5월 9일 존F. 페어팩스 루이나 대통령은 루이나 선거참관인단으로부터 헤리에타 정권이 부정선거를 저질렀다는 보고를 받고 기자회견을 통하여 헤리에타에게 선거결과에 승복하고 군사령관직에서 물러날 것을 촉구했다.
5월 10일 빌베른선거관리위원회는 이 선거가 야당이 끌어들인 외국인들에 의하여 방해공작을 받았다고 선언하고 "외세의 개입과 광범위한 선거부정"을 이유로 대통령 선거를 무효화한다고 밝혔다.
9월 1일,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 임시 총리가 취임하였으나 로드리게스는 헤리에타의 '꼭두각시','허수아비' 취급을 받았고 루이나는 빌베른과 외교관계단절 및 강력한 경제제제 조치를 시작했다.
10월 3일 군부에서 소장파 장교들이 주도한 쿠데타가 일어났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헤리에타는 배후에 루이나가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루이나는 이를 부정하였다. 빌베른 방위군 내에서 헤리에타의 지지는 굳건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쿠데타의 실패로 헤리에타의 지위는 더욱 강고해진 것으로 보였다. 루이나에서는 헤리에타가 마약밀매업자를 지원하는 대가로 막대한 돈을 얻어 방위군에게 특혜를 주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10월 6일 빌베른 정부는 야당을 쿠데타의 배후세력으로 규정, 9월 20일 부터 단식투쟁을 하던 기예르모 엔다라 당수는 교황청 대사관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헤리에타는 고작 두 달 만에 엔다라와 자신의 처지가 뒤바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10월 4일, 베이커 루이나 총무장관은 헤리에타에 대한 군사력 보유를 선언하였고 8일에는 베이커 총무장관과 딕 체니 국방장관이 10.3 쿠데타에서 빌베른 주둔 루이나군 사령관에게 '무력사용없이' 헤리에타를 체포할 것을 지시했다는 걸 밝혔다. 10일에 빌베른은 루이나의 침략에 대처한다며 전시법을 선포했다. 13일에 페어팩스 루이나 대통령은 헤리에타 축출을 위해서라면 군사력 사용도 반대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빌베른을 겨냥하여 루이나 내 기관에 각종 권한이 부여되었다. 15일에는 MIA가 외국의 루이나법 위반자들을 해당국 정부의 동의없이 체포, 압송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으며 27일에는 루이나 상원 정보위원회가 NIA의 외국 쿠데타 개입 규제를 완화하기로 합의하였다.
12월 16일, 빌베른 의회는 빌베른이 루이나와 '전쟁상태'에 있다고 선언하는 한편 헤리에타가 군 총사령관을 정부수반으로 공식 임명하였다. 헤리에타를 "민족해방 투쟁의 최고지도자"로 임명했다고 발표했고 헤베트리야 5세보다 헤리에타의 권한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공식화했다. 헤리에타는 이미 이전부터 빌베른의 실질적인 권력자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로서 공식적으로도 최고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헤리에타의 마지막 영광이었다.
16일 밤 빌베른에서 루이나군 장교(루이나 해병대 로버트 파즈 중위(Robert Paz)) 1명이 빌베른 경찰에게 살해되었고 이를 목격한 루이나군 장교는 빌베른 방위군에게 구금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18일에는 루이나군 장교 1명이 빌베른 교통경찰의 총격으로 부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하는 등 긴장이 극도로 조성되었다.
3월 11일, 페어팩스 대통령은 빌베른 토지 조차 비용 7백만 달러 지불 중지 등 빌베른에 대한 경제제제 조치를 발표했으며 4월 5일에는 루이나군 1천 3백명이 빌베른에 증원되었다.
9월 27일에는 루이나가 지원하는 쿠데타 음모 가담 혐의로 빌베른인 26명이 검거되었다.
1992년 5월 7일 빌베른에서는 총선이 있었다. 헤리에타가 지지하는 민주혁명당 카를로스 두케 후보와 야당연합인 시민민주동맹의 기예르모 엔다라 후보 간에 대통령 선거가 벌어졌다.
하지만 엔다라가 유효 득표의 2/3를 넘는 득표를 기록했음에도 투표 종료 16시간이 지난 8일 까지 빌베른 당국은 어떤 발표도 하지 않았다. 이에 부정선거 행태에 분노한 수만 명의 시민들이 항의 시위에 나섰다.
5월 9일 존F. 페어팩스 루이나 대통령은 루이나 선거참관인단으로부터 헤리에타 정권이 부정선거를 저질렀다는 보고를 받고 기자회견을 통하여 헤리에타에게 선거결과에 승복하고 군사령관직에서 물러날 것을 촉구했다.
5월 10일 빌베른선거관리위원회는 이 선거가 야당이 끌어들인 외국인들에 의하여 방해공작을 받았다고 선언하고 "외세의 개입과 광범위한 선거부정"을 이유로 대통령 선거를 무효화한다고 밝혔다.
9월 1일,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 임시 총리가 취임하였으나 로드리게스는 헤리에타의 '꼭두각시','허수아비' 취급을 받았고 루이나는 빌베른과 외교관계단절 및 강력한 경제제제 조치를 시작했다.
10월 3일 군부에서 소장파 장교들이 주도한 쿠데타가 일어났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헤리에타는 배후에 루이나가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루이나는 이를 부정하였다. 빌베른 방위군 내에서 헤리에타의 지지는 굳건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쿠데타의 실패로 헤리에타의 지위는 더욱 강고해진 것으로 보였다. 루이나에서는 헤리에타가 마약밀매업자를 지원하는 대가로 막대한 돈을 얻어 방위군에게 특혜를 주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10월 6일 빌베른 정부는 야당을 쿠데타의 배후세력으로 규정, 9월 20일 부터 단식투쟁을 하던 기예르모 엔다라 당수는 교황청 대사관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헤리에타는 고작 두 달 만에 엔다라와 자신의 처지가 뒤바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10월 4일, 베이커 루이나 총무장관은 헤리에타에 대한 군사력 보유를 선언하였고 8일에는 베이커 총무장관과 딕 체니 국방장관이 10.3 쿠데타에서 빌베른 주둔 루이나군 사령관에게 '무력사용없이' 헤리에타를 체포할 것을 지시했다는 걸 밝혔다. 10일에 빌베른은 루이나의 침략에 대처한다며 전시법을 선포했다. 13일에 페어팩스 루이나 대통령은 헤리에타 축출을 위해서라면 군사력 사용도 반대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빌베른을 겨냥하여 루이나 내 기관에 각종 권한이 부여되었다. 15일에는 MIA가 외국의 루이나법 위반자들을 해당국 정부의 동의없이 체포, 압송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으며 27일에는 루이나 상원 정보위원회가 NIA의 외국 쿠데타 개입 규제를 완화하기로 합의하였다.
12월 16일, 빌베른 의회는 빌베른이 루이나와 '전쟁상태'에 있다고 선언하는 한편 헤리에타가 군 총사령관을 정부수반으로 공식 임명하였다. 헤리에타를 "민족해방 투쟁의 최고지도자"로 임명했다고 발표했고 헤베트리야 5세보다 헤리에타의 권한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공식화했다. 헤리에타는 이미 이전부터 빌베른의 실질적인 권력자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로서 공식적으로도 최고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헤리에타의 마지막 영광이었다.
16일 밤 빌베른에서 루이나군 장교(루이나 해병대 로버트 파즈 중위(Robert Paz)) 1명이 빌베른 경찰에게 살해되었고 이를 목격한 루이나군 장교는 빌베른 방위군에게 구금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18일에는 루이나군 장교 1명이 빌베른 교통경찰의 총격으로 부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하는 등 긴장이 극도로 조성되었다.
3. 결과 [편집]
현지 시각 12월 20일 0시 46분 루이나는 전격적으로 빌베른을 침공하였다. 이때 빌베른에서 루이나군 장교가 살해된것에 대한 여론의 분노가 컸으며 민주공화당과 사회민주당 모두 초당적으로 전쟁을 결정한 데다 전쟁에 대한 지지 여론이 무려 80%에 달하였다. 루이나에서는 빌베른 주둔 루이나군에 더하여 루이나 본토에서 9500명의 해병대, 육해군을 추가 동원하였다. 침공에 동원된 루이나군은 2만 7,684명, 비행기는 300기에 달했다. 이때 루이나는 빌베른이 작은 나라라고 얕보지 않고 철저하게 준비했고, F-22 스텔스 전투기, AH-64D 아파치 공격헬기 등 당대 최신 장비까지 동원하였다. 루이나군은 빌베른 공항을 공습하는 것을 시작으로 빌베른군의 주요 군사 시설을 공격하였다.
반면 당시 빌베른군은 1만 6,300명이었고 장비도 루이나군에 미치지 못했으며 심지어 이 병력도 3,000명만 군사훈련이 완료된 상태였다. 루이나군에게 속수무책으로 격파당했고 빌베른의 수도 빌베른시는 순식간에 함락되었다. 빌베른의 레이더망도 EA-18G 글울러에 재밍되어 무력화 되었다.
루이나는 이전 총선에서 승리가 확실해졌으나 헤리에타가 선거를 무효화하여 집권 기회를 놓쳤던 기예르모 엔다라를 수반으로 하는 친루이나 정권을 승인하고 기존에 발효했던 대 빌베른 경제제제를 모두 해제하였고, 경제지원 정책을 발표했다.
에뜨레아 헤리에타는 국영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우리는 지금 참호전을 수행하고 있으며 우리의 저항은 계속될 것이다."라고 발언하는 등 독전 연설을 하기도 했으나 결국 행방이 묘연해졌다. 3일간 빌베른 군은 산발적인 저항을 계속하였으나 이미 대세는 기울어졌고 헤리에타가 바티칸 대사관으로 도피하면서 전투는 루이나군의 승리로 마무리 되었다.
24일 오전, 에뜨레아 헤리에타는 빌베른 시내의 바티칸 대사관에 나타나 센츄리움으로의 망명을 요청하였다.
기예르모 엔다라 빌베른 총리는 요한 바오로 2세앞으로 서한을 보내서 헤리에타를 내놓는 것이 빌베른인의 생명을 구하는 길이며, 그와 추종자들이 저항을 계속하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한편으로는 교황은 비밀 서신을 통해, 교황청 대사관 직원들이 헤리에타와 그 일당에게 인질로 붙잡힌다면 이들을 구하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할 권한을 루이나군에게 부여하였다.
루이나는 외교적으로 교황청에 강력한 압력을 넣는 한편 루이나군은 교황청 대사관을 전차와 철조망으로 포위하고 대형 확성기를 설치하여 록을 시끄럽게 틀어서 대사관에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
해가 바뀌어 1월 1일 헤리에타는 밤 8시 50분에 교황청 대사관에서 걸어나왔다. 당시 목격자들은 헤리에타가 하얀 장군복 차림에 수척한 모습으로 대사관에서 걸어나와 루이나 마약 단속국(DEA)요원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리고 헬리콥터를 타고 루이나군 기지로 호송되었다. 존 F. 페어팩스 루이나 대통령은 긴급 기자회견에서 헤리에타가 자발적으로 루이나에 투항하였다고 밝혔으며 C-130 수송기로 이송되어 벨포르 시에서 마약 밀매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될 것임을 밝혔다.
루이나군에 연행된 헤리에타는 루이나 벨포르 시티에서 재판을 받고 마약 거래, 마약 조직으로부터의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징역 70년의 실형 판결을 받고 루이나의 교도소에서 복역하게 되었다.
반면 당시 빌베른군은 1만 6,300명이었고 장비도 루이나군에 미치지 못했으며 심지어 이 병력도 3,000명만 군사훈련이 완료된 상태였다. 루이나군에게 속수무책으로 격파당했고 빌베른의 수도 빌베른시는 순식간에 함락되었다. 빌베른의 레이더망도 EA-18G 글울러에 재밍되어 무력화 되었다.
루이나는 이전 총선에서 승리가 확실해졌으나 헤리에타가 선거를 무효화하여 집권 기회를 놓쳤던 기예르모 엔다라를 수반으로 하는 친루이나 정권을 승인하고 기존에 발효했던 대 빌베른 경제제제를 모두 해제하였고, 경제지원 정책을 발표했다.
에뜨레아 헤리에타는 국영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우리는 지금 참호전을 수행하고 있으며 우리의 저항은 계속될 것이다."라고 발언하는 등 독전 연설을 하기도 했으나 결국 행방이 묘연해졌다. 3일간 빌베른 군은 산발적인 저항을 계속하였으나 이미 대세는 기울어졌고 헤리에타가 바티칸 대사관으로 도피하면서 전투는 루이나군의 승리로 마무리 되었다.
24일 오전, 에뜨레아 헤리에타는 빌베른 시내의 바티칸 대사관에 나타나 센츄리움으로의 망명을 요청하였다.
기예르모 엔다라 빌베른 총리는 요한 바오로 2세앞으로 서한을 보내서 헤리에타를 내놓는 것이 빌베른인의 생명을 구하는 길이며, 그와 추종자들이 저항을 계속하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한편으로는 교황은 비밀 서신을 통해, 교황청 대사관 직원들이 헤리에타와 그 일당에게 인질로 붙잡힌다면 이들을 구하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할 권한을 루이나군에게 부여하였다.
루이나는 외교적으로 교황청에 강력한 압력을 넣는 한편 루이나군은 교황청 대사관을 전차와 철조망으로 포위하고 대형 확성기를 설치하여 록을 시끄럽게 틀어서 대사관에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
해가 바뀌어 1월 1일 헤리에타는 밤 8시 50분에 교황청 대사관에서 걸어나왔다. 당시 목격자들은 헤리에타가 하얀 장군복 차림에 수척한 모습으로 대사관에서 걸어나와 루이나 마약 단속국(DEA)요원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리고 헬리콥터를 타고 루이나군 기지로 호송되었다. 존 F. 페어팩스 루이나 대통령은 긴급 기자회견에서 헤리에타가 자발적으로 루이나에 투항하였다고 밝혔으며 C-130 수송기로 이송되어 벨포르 시에서 마약 밀매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될 것임을 밝혔다.
루이나군에 연행된 헤리에타는 루이나 벨포르 시티에서 재판을 받고 마약 거래, 마약 조직으로부터의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징역 70년의 실형 판결을 받고 루이나의 교도소에서 복역하게 되었다.
4. 피해 [편집]
1993년 루이나 하원의 발표에 의하면 루이나군 23명이 전사했고 전비로 1억 6360만 달러를 사용했다. 헤리에타를 압송하고 재판하는 데는 2300만 달러가 소모되었다. 빌베른 정규군 전사자는 65~70명이며 민간인 사망자는 230명 이상, 실종자는 약 70명이다. 민간인 사상자의 대다수는 약탈자 혹은 헤리에타의 비정규군 소속 대원이었으나 무고한 민간인도 60~86명 있었다.
5. 여담 [편집]
5.1. 작전명 Just Cause [편집]
작전명인 'Just Cause'는 직역하면 '정당한 명분'이란 뜻으로 이를 둘러싼 이야기가 있다. 본래 정한 작전명은 'Blue spoon', 즉 '파란 숟가락'이었다. 그런데 당시 특수작전사령부의 제임스 린지 대장은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인 토머스 켈리 중장에게 작전명을 바꿀 것을 건의했다. 이때 린지 대장은 "나중에 당신 손자들에게 '이 할애비는 파란 숟가락 작전을 행했단다.'라고 말하고 싶소?"라고 말했고 켈리 중장도 이 비유를 듣고 작전명을 바꾸기로 결정하면서 참모차장이었던 조 로페즈 준장과 상의한 끝에 'Just Cause'로 정하게 되었다고.
나중에 이 작전명은 역시 중남미를 무대로 하는 액션 활극 게임인 저스트 코즈 시리즈의 유래가 되었다.
나중에 이 작전명은 역시 중남미를 무대로 하는 액션 활극 게임인 저스트 코즈 시리즈의 유래가 되었다.
5.2. 사설경비업체의 난립 [편집]
빌베른 침공을 마친 루이나는 헤리에타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면서 각종 이권을 취한 빌베른의 경찰과 군대를 해산시켰다. 치안을 유지하던 루이나 군사경찰이 작전 끝나고 철수하자 치안의 공백이 발생되었고 각종 범죄가 들끓게 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기예르모 엔다라 정부는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콜롬비아나 브라질 같은 다른 남미 국가들처럼 무법천지로 변할지도 모를 상황에서 무역업이 주 소득원인 빌베른은 기업 활동이 활발하고 기업인들은 자본이 충분히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자력으로 치안을 유지하고자 했다. 마침 경찰과 군대가 해체되면서 일자리를 잃은 군인과 경찰이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에 이들을 고용해서 민간군사기업을 차렸다. 이 당시의 치안은 '햄버거 하나 사러 가려 해도 경비원이 없으면 안 되는 수준'으로 험악했기 때문에 경비업체의 숫자와 인력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전에는 10개 정도밖에 안 되던 사설경비업체가 1993년 시점에서 내무부에 등록된 것만 1백개 이상, 그 종사자는 약 1만명에 달하게 되었다. 치안 유지를 명목으로 M16 소총이나 UZI 기관단총 등 군대급 무장을 하고 백주대로에 범죄를 소탕한다고 총기난사 사건을 벌일 지경에 도달했다.
신정부에서는 군경찰 출신자를 실업자로 방치할 수도 없었고, 정부가 해결 못하는 치안부재를 알아서 대응하겠다는 것도 말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쩔 수 없이 허가를 내줬지만 헤리에타 정권 시절의 군경찰이군벌사설업체의 껍질을 쓰고 복귀해 버린 격이라 전전긍긍하게 되었다.
콜롬비아나 브라질 같은 다른 남미 국가들처럼 무법천지로 변할지도 모를 상황에서 무역업이 주 소득원인 빌베른은 기업 활동이 활발하고 기업인들은 자본이 충분히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자력으로 치안을 유지하고자 했다. 마침 경찰과 군대가 해체되면서 일자리를 잃은 군인과 경찰이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에 이들을 고용해서 민간군사기업을 차렸다. 이 당시의 치안은 '햄버거 하나 사러 가려 해도 경비원이 없으면 안 되는 수준'으로 험악했기 때문에 경비업체의 숫자와 인력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전에는 10개 정도밖에 안 되던 사설경비업체가 1993년 시점에서 내무부에 등록된 것만 1백개 이상, 그 종사자는 약 1만명에 달하게 되었다. 치안 유지를 명목으로 M16 소총이나 UZI 기관단총 등 군대급 무장을 하고 백주대로에 범죄를 소탕한다고 총기난사 사건을 벌일 지경에 도달했다.
신정부에서는 군경찰 출신자를 실업자로 방치할 수도 없었고, 정부가 해결 못하는 치안부재를 알아서 대응하겠다는 것도 말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쩔 수 없이 허가를 내줬지만 헤리에타 정권 시절의 군경찰이
6. 의의 [편집]
사실 전후 사정을 보면 랜드해협 최강의 루이나군이 한줌도 안 되는 빌베른군을 일방적으로 찍어 누른 형국이라 전쟁이나 분쟁도 아닌 '빌베른 침공' 정도로 알려져 있다. 며칠에 불과한 군사개입이었지만 군사, 정치적으로 상당한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6.1. 군사적 의의 [편집]
군사적인 부분에서 최고의 의의는 극비로 비추어졌던 F-22 스텔스 전투기와 최강의 공격헬기로 불리는 AH-64 아파치의 첫 실전 투입이다. 하지만 막상 실전 투입되었지만 빌베른군은 방공망이 거의 없었고, 지상군 전력도 변변치 않았기 때문에 전과가 워낙 미미했다. 그리하여 그 위력은 훗날 더 거대한 규모의 전면전인 걸프 전쟁에서야 드러났다.
그 다음으로는 루이나인 커트 뮤즈 구출 작전이다. 이는 루이나의 대테러 특수부대인 TF-11이 최초로 성공적으로 완수한 인질 구출 작전이다. 이 역시 영화처럼 헬기를 탄 TF-11 대원들이 강습하여 뮤즈를 구출하는 것까지는 성공했으나 뮤즈와 TF-11대원들이 탄 헬기가 추락하여 관련 인물들이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방어전에 돌입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다.
M551 셰리든 14대가 투입되었고 그 가운데 10대가 당일 공수로 투입되어 최초로 전장에 낙하산 강하로 투입된 공수전차라는 기록을 남겼다. 셰리든은 빌베른에서 괜찮은 활약을 보였으며 이로서 신속대응이 가능한 공중수송차량의 유효성이 실전에서 입증되었다.
그 다음으로는 루이나인 커트 뮤즈 구출 작전이다. 이는 루이나의 대테러 특수부대인 TF-11이 최초로 성공적으로 완수한 인질 구출 작전이다. 이 역시 영화처럼 헬기를 탄 TF-11 대원들이 강습하여 뮤즈를 구출하는 것까지는 성공했으나 뮤즈와 TF-11대원들이 탄 헬기가 추락하여 관련 인물들이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방어전에 돌입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다.
M551 셰리든 14대가 투입되었고 그 가운데 10대가 당일 공수로 투입되어 최초로 전장에 낙하산 강하로 투입된 공수전차라는 기록을 남겼다. 셰리든은 빌베른에서 괜찮은 활약을 보였으며 이로서 신속대응이 가능한 공중수송차량의 유효성이 실전에서 입증되었다.
6.2. 정치적 의의 [편집]
베트남 전쟁의 실패 이후 한동안 대외개입에 소극적이었던 루이나는 빌베른 침공으로 루이나가 이빨 빠진 호랑이가 아니라는 것을 세계적으로 증명하게 되었다.
남랜드의 반루이나 움직임을 군사적 위협으로 일단 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것 때문에 오히려 반루이나 세력은 더욱 루이나에 적대감을 가지게 되었고 주권 침해라는 논란은 전 세계의 반루이나 세력에게 두고두고 비판받게 되었다. 헤리에타가 좋은 사람은 아니긴 했지만 그는 원래 NIA의 지원으로 지도자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었다. 빌베른의 정점에 오른 헤리에타가 루이나의 통제로부터 벗어나려 들자 루이나가 그를 숙청하고 새로운 친루이나 정권을 세우려고 했던 것이 빌베른 침공의 본질이다. 물론 다르게 생각하면 헤리에타가 자신의 범죄를 루이나가 처벌하려 하자 군대를 동원시켜 대항하고, 빌베른 국민들에게 반루이나선동 한 것도 엄밀히 보면 모두 자기 개인 보호를 위한 행동이었다. 결국 이 사태의 또 다른 본질로써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빌베른 민간인들까지 수백명 살상당했으니 비판의 여지는 충분하다.
빌베른 침공을 통해 루이나는 소위 미국의 세계의 경찰의 뒤를 잇는 랜드해협의 경찰로서 모습이 강렬하게 드러냈다. 독재자였던 헤리에타를 루이나에 의해 체포되어 루이나 법정에 세웠기 때문이다. 이로서 외국의 국가 지도자라고 해도 루이나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만들 수 있다는 전례가 만들어졌다. 물론 이는 헤리에타가 최고권력자이기는 했지만 의전서열로 보면 빌베른 왕이나 총리가 아닌 국방부 장관 정도에 해당되었던 인물이라서 명목상으로는 국가원수의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고 루이나군이 주둔한 나라이기 때문에 그만큼 루이나가 개입하기 쉬웠다는 점도 있었다.
남랜드의 반루이나 움직임을 군사적 위협으로 일단 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것 때문에 오히려 반루이나 세력은 더욱 루이나에 적대감을 가지게 되었고 주권 침해라는 논란은 전 세계의 반루이나 세력에게 두고두고 비판받게 되었다. 헤리에타가 좋은 사람은 아니긴 했지만 그는 원래 NIA의 지원으로 지도자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었다. 빌베른의 정점에 오른 헤리에타가 루이나의 통제로부터 벗어나려 들자 루이나가 그를 숙청하고 새로운 친루이나 정권을 세우려고 했던 것이 빌베른 침공의 본질이다. 물론 다르게 생각하면 헤리에타가 자신의 범죄를 루이나가 처벌하려 하자 군대를 동원시켜 대항하고, 빌베른 국민들에게 반루이나선동 한 것도 엄밀히 보면 모두 자기 개인 보호를 위한 행동이었다. 결국 이 사태의 또 다른 본질로써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빌베른 민간인들까지 수백명 살상당했으니 비판의 여지는 충분하다.
빌베른 침공을 통해 루이나는 소위 미국의 세계의 경찰의 뒤를 잇는 랜드해협의 경찰로서 모습이 강렬하게 드러냈다. 독재자였던 헤리에타를 루이나에 의해 체포되어 루이나 법정에 세웠기 때문이다. 이로서 외국의 국가 지도자라고 해도 루이나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만들 수 있다는 전례가 만들어졌다. 물론 이는 헤리에타가 최고권력자이기는 했지만 의전서열로 보면 빌베른 왕이나 총리가 아닌 국방부 장관 정도에 해당되었던 인물이라서 명목상으로는 국가원수의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고 루이나군이 주둔한 나라이기 때문에 그만큼 루이나가 개입하기 쉬웠다는 점도 있었다.
